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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25-17 창3가이드

창2:25-3:21, 핵심 구절 창3:15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5년 열두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결국 타락하여 형이 동생을 살인하는 죄를 저지른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따먹은 죄가 인간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먼저 오늘의 본문의 context 를 살펴 보면, 창 1장과 2장에서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 그리고 에덴 동산과 금지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오늘 본문인 창3장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금단의 열매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하나님의 형벌을 받은 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자를 유혹한 뱀은 모든 가축과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는 벌을 주셨고 여자에게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크게 더해 주셨으며 아담에게는 땅이 그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그의 평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인데, 그가 흙에서 왔으니 이제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와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원시 복음을 선포해 주셨고, 또 서로 사랑했던 남자와 여자가 이제는 “여자는 남편을 자기 손 안에 두기를 원하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리려 하게 될 것”이라 시며 두 사람의 온전한 사랑의 관계가 서로를 자기 뜻대로 행동하게 하려 하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     이러한 창 1장에서 3장에 걸친 창조와 인간의 타락 이야기들에 대해 신학적인 의미를 한번 정리해서 살펴 보면, 먼저 창 1장과 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의 꽃인 인간은 하나님은 그의 기쁘신 뜻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존재인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시며 결국 선악간 판단과 기준은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라고 할 때 “알다”라는 고대 히브리 동사는 야다(ידע)는 a) 선악 간에 알다, 영어로는 know 외에도 b) 선악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다 즉 영어로는 posses 하다, 그리고 c) 선악 간에 결정하다 즉 영어로 determine 이란 뜻이 있는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선악 간에 결정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선악을 결정하는 일은 스스로 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래서 또한 루이 벌코프도 그의 “조직 신학”책에서 선악과가 의미하는 바는 “자기 자신에게 선한 것과 악한 것을 판별하는 기준을 하나님이 정하실 것인가 아니면 인간 자신이 정할 것인가를 보여 주기 때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 뜻을 따르는 종과 같은 존재로 만드셨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어떤 사안과 어떤 사람에 대해 제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완전한 사정과 의도를 다 파악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생각해 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특히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인간에게 우리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하여 선악간에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면, 당연히 모두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절에서 여자가 하나님께서 그 선악과를 “만지지도 말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나, 또 5절에서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이라고 유혹한 말, 그리고 또 6절에서 여자가 보기에 그 나무 열매가 마치 자기를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는 말씀을 보면 결국 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본질에는 루이 벌코프가 지적한 것처럼, 아담과 이브가 자신을 하나님과 대립하는 위치에 두고,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지 못하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그 지식을 하나님으로 부터 빼앗아와서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한 의도가 있는 바, 이러한 것들로 말미암아, 결국 그들의 지성에서는 불신앙과 교만이, 의지에서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을 그리고 감정에는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찾아오는 거룩하지 못한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3)     이와 같은 인간의 타락에 따른 인간 내면의 변화에 대하여 벨직 고백서 제15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는데. 즉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미쳐간 것을 믿는다. 그 죄는 인간성 전체의 타락이며 유전적인 병이며, 이 병 때문에 유아라 할지라도 모태 안에서 전염되는 것이며, 사람 안에서 모든 종류의 죄를 만들며 그 죄가 뿌리를 박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모든 인류를 정죄하시기에 넉넉하다. 이 원죄는 세례의식으로도 박멸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마치 물이 샘에서 솟아나듯이 죄가 이 무서운 원천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가되어서 멸망하게 못하고 그의 은혜와 자비로 그들은 용서를 받는다. 이것은 그들이 죄 가운데서 안주하지 않고 오직 타락을 의식하고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을 받고자 신자들을 이따금 탄식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는 다만 모방으로 생긴다고 주장하는 펠라기우스파의 과오를 배격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4)     이와 같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인간의 본성이 부패하게 한 것을 두고 신학적 용어로는 원죄라고 하는데, 루이 벌코프의 “조직 신학” 책에 의하면, 원죄란 인간이 태어난 죄악된 상태와 조건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선천적으로 물려 받는 것이 아니라 전가되는 것으로, 이것을 원죄라고 부르는 이유는 a) 그것이 인류의 원초적인 뿌리로 부터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이요 b) 또한 그것이 태어날 태부터 인간의 생명 안에 현존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모방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며, c) 또한 그것이 인간의 삶을 오염시키는 모든 실제적인 죄들의 내적 뿌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원죄는 두가지 요소 즉, 원초의 죄책과 원초의 오염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죄책이라는 단어는 죄가 정의 혹은 율법상의 형벌과의 상관성을 말하는 것으로, 죄책이 있는 자는 율법과 법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죄책감과 형벌적 책임 두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전자는 어떤 행위 또는 상태의 고유한 도덕적 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죄의 본질에 속하며, 죄성의 필수 구성요소로, 스스로 죄를 범한 자들에게 영구히 부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용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거한 칭의나 단순한 사면으로 제거 될 수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의 죄책감은 다른 사람에게 전이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벌적 책임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 또는 스스로 결단하여 율법을 범한데 대한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죄의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법적 제재와의 관계를 의미하며, 이는 공의를 충족시킴으로써 제거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이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대신 취할 수도 있는 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신자의 죄책이 제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원죄에는 원초의 오염이 있는데, 곧 원의의 결여과 적극적 악의 존재로써, 죄를 향한 생득적인 적극적 성질로 전적인 부패 또는 전적인 무능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먼저 전적 부패란 모든 인간이 그 가능성에 있어서 철저하게 절대적으로 타락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또한 죄인에게 하나님의 뜻에 관한 내적인 지식, 또는 선과 악을 분별하는 양심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리고 죄인이 종종 다른 사람 안에 나타난 덕스러운 행위나 성격을 칭송하지 않는다거나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심없는 애정과 의지를 표현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 뿐 만 아니라, 모든 거듭나지 않은 인간이 생득적인 죄악성 때문에 온갖 유형의 죄에 빠진 다는 말이 아니라, 생득적인 부패가 인간의 성품의 모든 부분 곧 영혼과 육체의 모든 기능과 능력에 까지 확대 되었기에, 죄인 안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영적으로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다만 부패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전적 부패가 인간의 무능력에 끼친 효과를 놓고 생각할 때 그것은 전적 무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말이 자연인이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말은 자연인이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개혁파 신학자들은 인간이 자연적인 선, 시민법적인 선 또는 의 그리고 외적인 종교적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심지어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덕을 소유할 수 있으며 그것을 사회 관계 그리고 동료들의 신실한 감사와 인정을 받을 만한 많은 행위와 감정을 통해서 나타낼 수 있으며 어느 정도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와 같은 행위와 감정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펴 보았을 때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 결함이란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또한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부패를 전적 무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거듭나지 않은 죄인은 아무리 작은 행위일지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기록한 율법의 요구에 반응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과 그는 근본적으로 죄와 자아를 선호하는 태도를 바꿀 수 없으며 그 같은 변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도 없다는 의미로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어떠한 영적인 선도 행할 수 없다는 것으로 성경의 요 1:13; 3:5; 6:44; 8:34; 15:4,5; 롬 7:18,24; 8:7,8; 고전 2:14; 고후 3:5; 엡 2:1, 8:10; 히 11:6 등에서 이를 충분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5)     그런데 문제는 이런 중차대한 죄책과 오염이 죄를 범한 당사 뿐 만 아니라, 그 후손인 인류 전반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데, 이렇게 아담의 죄와 인류의 죄 사이의 인과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본 펠라기우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아담의 죄와 인류의 죄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인 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여, 최초의 죄는 어디까지나 아담의 죄일 뿐, 그의 후손과는 무관하고, 단지 아담은 후손들에게 죄를 짓도록 영향을 끼친 죄악의 본보기 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사람은 단지 죄를 안 짓겠다고 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인데, 실은 이 견해는 사람이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는 아무런 가망 없는 죄의 노예 상태에 있으며 또한 그의 선행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에 전혀 부족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엡 2:1-2; 마 15:18-19; 롬 7:23; 히 6:1, 9:14 등과 상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소위 "죄성"으로 언급되는 죄의 성향을 물려받아, 자연스럽게 죄를 짓게 되며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그칠 수 없는 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그칠 수 있도록 “선행적 은총”이라는 보편적인 은혜를 주신 바, 따라서, 우리 인간은 아담의 죄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고 단지 우리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하지만 이 가르침은 모든 사람이 아담과 유사한 방법으로 죄를 짓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형벌을 받는다는 고전 15:22; 롬 5:12-18에서의 가르침과 상충되며, 또한 성경 어대에도 “선행적 은총”에 대한 교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칼빈주의는 아담의 죄는 우리로 하여금 죄성을 갖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유죄 상태 즉 죄책이 있는 상태로 만들었는 바, 이에 시 51:5에서는 우리가 원죄를 가지고 잉태되어, 렘 17:9 말씀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을 물려 받았고, 그래서 롬 5:12, 19에서는 아담의 죄책과 형벌(죽음)이 우리에게도 속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렇게 아담의 죄책이 인류 보편의 죄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견해는 인류가 아담 안에 씨의 형태로 있었기에, 아담이 범죄했을 때, 인류 또한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고 보는 견해와 두번째로는 아담이 우리 인류의 대표로서 죄를 지었으므로 인류 역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따라서 칼빈주의를 따르는 우리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우리 인간은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자신의 죄를 극복할 수 없는데, 이러한 성령의 능력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십자가 상에서의 그분의 속죄를 의지할 때만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6)     이렇게 아담의 죄가 인간에게 전이되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하기를 롬 5:12에서 한 사람 즉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는데,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다고 하면서 창 6:5에서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고 또 전 9:3에서도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살다가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바, 롬 3:11에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을 뿐 아니라 대하 6:36에서는 오히려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으며 또한 전 7:20에서는 심지어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는 바 이것은 모두 렘 17:9 말씀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엡 2:1-2에서 우리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존재라고 말씀하면서 롬 3:23에서는 결국 이렇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히 9:14에서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     그리고 이렇게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인 원초적인 죄책과 원초적인 오염이 우리에게도 전이되었음을 대해 오늘의 본문에서도 말해주는데, 무슨 말인가 하면, 창 2:25에서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는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는데, 3:7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나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고 하고 있는 바, 우리는 이를 통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그들의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선악과를 따먹기 전후로 선악간 판단 기준이 바뀌었는데,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두 사람 모두 옷을 벗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으니 그 모든 것이 선하다고 생각 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은 후 즉 선과 악, 즉 옳고 그런 것을 그들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하니,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 즉 수치스러운 것이 되었고 그래서 나뭇잎을 엮어 그 수치를 가려야만 했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선악과를 따 먹은 행위 즉 선악 간에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결정하게 되니 이런 결과를 가져 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 간의 차이점들 즉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잘하고 다른 사람은 저것을 잘하는 이러한 개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으니 실은 다 선한 것인데,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간 인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되니 그러한 사람 간의 차이 마저도 선악 간에 정죄하게 되었던 것 입니다. 우리의 삶을 뒤 돌아 보면 이런 일들이 일어 나는데,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는 것과 또 서로 돕는 것이 선한 것임을 말씀해 주심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었지만,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 각자의 생각대로 선악을 구별하고 판단하게 되니, 서로의 개성 차이 마저도 옳고 그럼의 잣대로 판단하고 심지어 정죄까지 하는 일이 생겼고 그로 인하여  많은 다툼과 불화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는 서로의 생각 이면에 있는 의도와 그 상황을 제대로 다 알지도 못한 채 상대방의 행위에 대해서 선악 간에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서로 싸우는 일들도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바로 선악의 기준과 판단을 하나님 즉 절대자에게 맡기지 않고 인간들 스스로 하게 된 결과인 것이며, 인간 죄성의 반증인 것입니다.

8)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에게 “누가 너희 벗었음을 알렸느냐?” 고 물으셨는데, 그런데 실은 그들이 벗었음을 알린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사건 이후로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우리의 벗었음 즉 우리의 수치들을 알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고, 또 그러한 잣대를 남에게 마저 들이대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는 실은 하나님께만 있는데 그 지혜를 아담과 이브는 혹 선악과가 줄 수 있는 것 같이 “선악과를 본 즉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다고 말하고 있고 그래서 마침내 그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모든 선악의 판단과 정죄를 하는 그래서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즉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이 아닌 그들이 보기에 선한 그러나 결국 하나님 기준으로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다가 죽는 인생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 하옵기는, 올 한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사 매순간 우리가 어떤 목소리를 듣고 살아가는지 깨어 분별하고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복종시킴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그런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하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결국 선악의 기준과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또한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잠시 이 명령에 대해 한번 깊이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이렇게 선악 간에 인간이 판단하고 결정함으로 발생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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